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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터이야기


작성일 : 22-07-2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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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컬럼] 예비일 오후에
 글쓴이 : 이강덕
(조회 : 81)  

지난 주간, 나를 꼼짝하지 못하게 몇 개의 글이다.

 

설교자라는 한 인격체가 설교의 주어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하는 역시 사인(sign)이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내가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 이상을 말하고 있는 상징이며 사인이라는 뜻입니다. 강단에서 단수형 일인칭으로 서 있는 설교자는 자신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상징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설교자 자신에게 엄청난 부담과 중압갑을 줍니다. 설교자는 네 발을 보지 말고 내 입을 보시오!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자의 진정성이 있는 삶과 신앙이 담보되지 않는 설교는 죽은 설교입니다. 주님을 믿는 ’, 신앙에 따라 행동하는 ’,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 복음의 깊은 감동을 받고 사는 ’, 복음에 의해 스릴을 경험하는 ’, 복음에 의해 도전받는 ’, 복음에 의해 갈등하고 고민하는 ’, 한 마디로 진정성이 있는 가 강단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류호준, “교회에 하고픈 말”, 두란노,142.)

 

류 박사의 글이 거의 그로기 상태를 만들었는데, 내일 주일 설교에 인용하기 위해 또 무대 위로 올릴 수밖에 없었던 옥한흠 목사의 글은 나를 완전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카운터펀치가 되게 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울지는 못할지언정, 가슴을 치지 못할지언정, 말씀을 갖고 장난질을 쳐서야 되겠습니까? 말씀을 묵상하며 엉엉 우는 평신도만큼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말씀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옥한흠, “문득, 당신이 그리워질 때”, 필로, 205)

 

724일 주일 설교 원고 실었다. 경책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목사로 사는 나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평신도보다 나은 영성을 갖고 있는 목사인가, 나는 이렇게 외칠 수 있는 목사인가?

 

여러분은 담임목사 치열한 영적 분투함으로 준비한 설교를 영적인 진짜 무기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일을 준비하는 예비일이 언제나 비장하지만 내일 주일 역시 만만치 않은 긴장감이 맴돈다. 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본다.

 

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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